6월22일 김현주 이사장 “희귀질환, 유전 상담을 통해 관리·예방해야”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 인터뷰 희귀질환 정부 지원 아쉬워…예방적 차원 접근 필요 질환에 대한 정확한 상담 중요…유전 상담 서비스 강조 아픈데 치료조차 어려운 ‘희귀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이른바 ‘진단 방랑’을 경험하기 일쑤다. 운 좋게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치료 또한 쉽지 않다. 치료제가 있어도 국내에 없거나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신체적, 경제적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우리나라 희귀질환자는 약 80만 명.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다양한 의료적 도움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희귀질환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의료비 지원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환자와 가족들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는 건지, 어떤 질환인지, 유전이 되는 건지 등을 더 궁금해 하죠. 그래서 유전 상담이 굉장히 중요해요.”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은 지난 16일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유전상담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1994년부터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및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인물이다. 2001년 비영리 민간단체 ‘한국희귀질환연맹’을 설립했으며 2010년 ‘한국희귀질환재단’으로 변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희귀질환 인식의 중요성과 정부 지원 제도에 대한 의견, 유전 상담 서비스의 중요성 등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희귀질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유전학을 좋아했어요.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 부모의 형질을 닮는 것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죠. 1967년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소아과를 마치고, 30살에 뉴욕 Mt. Sinai 의과대학 에서 임상유전학을 전공하게 되었지요. 당시 미국의 8개 대학병원에서는 양수를 뽑아서(양수 천자) 거기에 떠다니는 세포를 배양하는 ‘다운증후군 산전 진단 검사법’을 막 시작하고 있었어요. 이 과정에서 임산부들에게 다운증후군과 고위험군에 대해 설명하고, 산전 진단을 받기 전에 동의하는 것이 필요했죠. 이러한 유전상담을 의사가 하기에는 임상유전학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해 전문 교육을 받은 유전상담사가 생기고, 그들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생겨났죠. 유전자 검사와 유전 상담이 미국에서 막 시작할 때 제가 직접 참여해 경험을 했죠. 이후 1994년에 아주대병원 건립 시 초빙되어 아주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유전학클리닉을 열고 유전상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06년에는 전문 유전상담사 교육 과정 대학원 프로그램도 만들었어요. 현재는 건양대병원에서 희귀질환 환자와 고위험군 가족들을 위한 유전상담 서비스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재단을 설립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1991년에 한국에 귀국할 때 미국에서는 고셔병(체내 필수 효소인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가 결핍돼 발병하는 유전질환) 치료제가 처음 개발됐어요. 마침 제 환자 중에 한 명이 고셔병 환아였는데, 한국에는 아직 약이 들어오지 않았었죠. 그래서 1년에 두 번 미국 학회에 참석하면서 약을 사와 치료를 했는데, 그 비용이 1년에 3억 정도였어요. 이 약이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도 일반 환자들이 치료 가능한 비용이 아니죠.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 1998년 SBS 함께 ‘고셔병 환자 치료기금 ARS 모금운동’ 시작해 고셔병 환자 12명의 치료를 지원했습니다. 이후 2001년 모든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진행한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을’ ARS 모금운동이 한국희귀질환연맹을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지금까지 관련 분야에 종사하시면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2001년 ‘희귀난치성질환 의료비 지원사업’이 시작된 것이죠. 정부는 고셔병?혈우병?근육병?말기신부전증 등 4개의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12년부터는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 사업을 통해 다양한 희귀질환을 진단할 수 있게 되었고, 지원하는 질환 수도 많아졌죠. 그래서 전에는 몰랐던 극희귀질환까지도 발견되면서 지원 대상 질환이 현재 1,000여 개가 넘게 됐어요. 그러나 유전자 진단 검사 전과 후에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국제 기준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유전자 진단 사업에 포함되지 못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후 2015년 12월에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정부가 희귀질환에 대한 예방과 관리를 하게 되는 법적 근거와 예산이 확보될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정부의 희귀질환 종합 정책 지원 계획에 기대를 해봅니다.”
-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낮은 수준입니다. 어떤 편견들이 있을까요.
“희귀질환은 드물지만 일반 사람도 돌연변이로 인해 유전자의 변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해요. 그로 인해 희귀질환이 생길 수도, 그게 내 자손에게 대물림 될 수 있는 것이죠. 희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죄가 있나요? 그냥 아픈 사람들이죠. 근데 티를 못내요. 편견 때문에. 저 집안은 사람들이 일찍 죽는다더라, 집안에 이상한 애가 있다더라 등 편견들 때문에 쉬쉬하고 알리기를 힘들어하죠. 하지만 병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이 혈우병으로 태어났고, 보인자인 딸들이 유럽 왕가에 시집을 가 다른 왕가에도 혈우병 왕자가 태어났어요. 이런 상황이 발생하니 세계적 관심과 연구가 많아져서 치료제도 일찍 개발되었고, 계속해서 더 좋은 치료제를 위한 연구·개발로 이어지고 있어요.”
“또한 희귀질환 중에는 나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는 질환도 많이 있어요. 이럴 경우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환자들은 너무 겁먹어있어요. 그래서 애를 안 낳으려고 하죠. 그게 안타까워요. 100%는 아니더라도 50%는 정상아를 낳을 수 있거든요.”
- 희귀질환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희귀질환 종류는 8,000개가 넘게 다양해요. 그러니까 진단이 잘 안되죠. 특히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서는 의사가 환자를 충분한 시간 동안 진료할 수 없어요. 평균 5분에서 길어야 10분이니까 환자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희귀질환 대부분은 미진단 되거나 일반 병으로 오진되기도 해요. 예를 들어 감기 기운이 지속돼 병원을 다녀요. 의사가 간단히 물어보고 약 처방을 해주죠. 근데 그래도 병이 안 나아요. 그렇게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다 결국에는 생소한 질환명을 진단받게 되는 것이죠. 이게 소위 말하는 ‘진단 방랑’이에요. 제가 만난 환자들의 대부분은 저에게 오기 전에 5~6곳의 대학병원을 돌고 오시더라고요.“
- 2016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됐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희귀질환관리법의 목적(제 1조)은 희귀질환의 적절한 관리와 예방이에요. 그런데 현재 정부의 종합 5개년 희귀질환 관리정책에는 예방적인 측면은 하나도 없어요. 의료비 지원과 진단 사업이 주요 내용이죠.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성 질환입니다. 가끔 돌연변이에 의해 새롭게 생기기도 하죠. 그러나 3분의 2 정도는 부모 중 한 쪽, 혹은 부모 모두의 열성 유전은 유전자의 변이가 자녀 세대로 와서 희귀질환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요. 대부분의 희귀질환은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특히 예방이 중요하죠. 또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무(제 3조)에 빠져 있는 것이 있어요. 바로 ‘유전상담 서비스’에요. 검사하고 진단하면 뭐하나요. 이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유전상담을 통해 환자와 가족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래서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병이 어떤 병인지, 고위험원은 무엇인지, 어떻게 유전이 되는지 환자에게 알려줘야 해요. 동시에 정상 아이도 갖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도요”
- 유전 상담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병에 대한 진단만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희귀질환은 유전자 변이에 의해 생기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환자가 알 필요가 있어요. 또한 유전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유전이 되는지, 안될 경우는 무엇인지 알아야 하죠. 그래야 나중에 가족 계획도 세울 수 있으니까요.”
“제가 만났던 환자 가족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근육병인 아들의 어머님이셨어요. 근육병은 정상인 보인자 엄마를 통해 아들에게 근육병으로 나타나요. 50%의 확률이죠. 첫 아들은 근육병이었고, 다음에 임신을 했어요. 그랬더니 또 아들이에요. 근육병이 나타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중절을 했어요. 무려 두 번이나요. 그러다가 재단의 유전상담 서비스 지원사업을 받기 위해 저를 찾아온 거예요. 딸도 걱정이고, 조카들도 걱정되니까. 그래서 아들 말고 엄마의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 드렸죠. 근육병은 엄마가 보인자인 경우와, 아들에게서 처음 돌연변이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검사해보니 엄마는 보인자가 없었어요. 그냥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번의 안타까운 일을 경험하신 거죠.”
-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의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인가요.
“처음 듣는 병명에 치료제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하시죠. 비용적인 부분도 부담이죠. 특히 정보가 부족한 것에 대해 많이 답답함을 느끼세요. 이런 부분에 대해 정확한 의학적, 유전학적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환자와 가족들은 처음에는 많이 힘들겠지만, 희귀질환을 이해하게 되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자기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결정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죠. 그 선택을 우리는 존중해야 하고요.”
- 앞으로 정부 정책에 담겼으면 하는 내용이 있나요.
“내년부터 시행될 제 2차 5개년 종합 계획에 유전상담 서비스 제공이 포함되길 바랍니다. 저희 재단에서 2012년 5월부터 현재까지 3,000여 건 이상의 유전상담 서비스를 지원·제공했는데요. 세 차례의 설문조사 결과 유전상담 서비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고, 필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전상담서비스는 미국에서는 1970년부터, 영국에서는 1980년부터, OECD 국가에서는 1990년도부터 제공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유전상담 서비스가 정부의 의료비 지원사업에 포함이 되지 않고 있어요. 의료 코드도 없고 급여도 책정되어 있지 않으니, 병원에서도 제공하지 않아요. 이런 부분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면 국내에서도 유전상담 서비스가 희귀질환의 관리와 예방을 위한 적절한 의료서비스로 충분히 제공될 수 있다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희귀질환 인식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사회 안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이 도움만 받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체가 되기도 하죠. 그 변화를 제가 이 현장에 있는 동안 봤어요. 본인의 희귀질환을 극복하고,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해요. 희귀질환을 극복한 개인들은 아직 그 숫자는 미비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자기 분야에서 의사로, 과학자로, 교육자로, 기자로 사회적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희귀질환 아동의 유전자 변이에만 관심 둘 게 아니에요. 부족한 건 잘하는 사람이 도와주면 되고, 또 반대가 될 수 있어요. 이들을 응원해주고 함께 사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뉴스포스트(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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