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유전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뒤, 유전질환이 어떻게 생겨 자식에게 유전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보통 유전질환은 부모에게서 정상이 아닌 유전자를 물려 받아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전질환이 반드시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이 유전질환의 출발점이 돼 자식,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이같은 1세대 유전질환을 ''유전자 돌연변이 질환''으로 부른다. 고령(남자 45세, 여자 35세) 임신, 방사선 노출, 흡연 등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주요 원인이다.
길병원 유전상담클리닉 김현주 교수는 "유전자 돌연변이 질환은 본인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 병을 대물림한다는 점에서 비극"이라며 "건강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너무 늦은 임신은 피하고, 흡연 등 건강에 유해한 습관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 돌연변이 어떻게 발생하나
우리 몸의 세포에는 유전자가 있고, 유전자 안에는 유전 정보가 저장된 DNA가 있다. 세포가 분열하면서 유전자의 복제와 분열이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DNA 서열이 비정상적으로 배열되면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이같은 유전자 돌연변이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다만 인간의 유전 시스템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으로 복구할 수 있고, 일부는 도태시켜 정상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세브란스병원 임상유전학과 이진성 교수는 "그러나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정자·난자와 같은 생식세포에도 영향을 줘 유전질환이 발생할 수 있고, 아예 생식세포 안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겨 다음 세대에 대물림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돌연변이 유발 요인
①고령 임신=나이 든 사람의 정자와 난자 안에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현주 교수는 "나이가 들면 정자·난자와 같은 생식세포를 만들기 위한 세포 분열 과정(감수분열)에 오류가 생겨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확인하기 위해 착상 전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지만, 보통 이 검사는 본인이 유전질환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을 때만 시행한다. 시험관 시술로 정자와 난자를 수정한 배아에서 세포를 검출해 유전자 이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②방사선=방사선은 원자력 에너지의 세기가 매우 높기 때문에, 아주 많은 양에 노출되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유한욱 교수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같은 지역의 유전자 돌연변이 질환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유전자의 영향을 주는 방사선 양은 100밀리시버트(mSv)이고, 인간이 1년 동안 자연적으로 받는 방사선양은 3mSv, 1회 엑스레이 촬영시 방출 방사선양은 0.1mSv, 1회 CT촬영시 10mSv이다. 유한욱 교수는 "필요한 의학적인 검사는 받아야 하지만, CT촬영과 같이 방사선 피폭량이 많은 경우에는 생식기(고환·난소) 부위를 가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③흡연=캐나다 보건부 동물실험 결과, 정자를 만드는 쥐의 정조 줄기세포에 담배 2개비에 해당하는 연기를 6주, 12주 동안 노출시켰더니 정자 속 유전자 돌연변이가 각각 1.4배와 1.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신여대 생명과학화학부 전용필 교수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흡연을 하면 정자세포 속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돌연변이 유전자가 자손에게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④항암제·독성화학물질·중금속=항암제는 암세포처럼 세포분열이 활발한 정자·난자와 같은 생식세포를 공격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제초제의 성분인 다이옥신은 세포 속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독성화학물질이다. 수은, 납, 카드뮴과 같이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 역시 오랫동안 노출돼 체내에 쌓이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기고자:이금숙 이나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