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희귀질환, 꼭 대물림되는 것 아냐…정확한 진단 통해 비극 막아야”
27년간 국내 희귀질환자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김현주 이사장
“희귀질환 관리와 예방 위해 유전상담서비스 제도화 꼭 필요”
"환자와 가족들, 도움 받는 위치에서 희망 전하는 모습 보며 가슴 뿌듯"
"유전상담서비스 들여왔으니 끝맺음 또한 내가 해야 하지 않겠나"
“저의 아들은 생후 백일이 지났을 무렵 근육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이듬해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진단이 내려지지 않아 근조직검사로 근육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들의 동생을 임신했는데 여러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는 임신한 아이가 아들인 경우 50% 발병확률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태아성별 검사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은 저로서는 두명의 근육병 아들을 키우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절박한 생의 낭떠러지에서 수술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님의 유전상담서비스와 유전진단 사업으로 보다 면밀한 유전자 검사는 물론 상세하고 편안한 유전상담을 비용 부담없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아들은 유전자 엑손 1개의 중복돌연변이가 발견되었고 저는 정상으로 판명되어 딸에게의 유전은 물론 저의 자매, 조카들에게의 유전확률은 없는 것으로 진단이 나와 유전의 대물림이라는 무서운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지난 2015년 근육장애인 가족인 엄춘화씨가 ‘의료난민,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 나와 발표한 사연이다. 당시 엄춘화 씨는 자세한 유전상담과 정확한 유전자 검사가 일찍 정착됐다면 자신들의 가족에게 찾아온 건강한 생명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며 유전상담서비스와 유전자 검사의 국가적인 지원을 거듭 촉구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전상담서비스를 시작한 곳은 아주대병원이 최초다.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이 1994년 아주대병원 개원 당시 유전학클리닉을 개소하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유전상담을 통해 유전성 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단 및 치료할 수 있게 됐다.
김현주 이사장은 2001년 한국희귀질환연맹을 창립,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을 위한 희귀질환 DB구축, 의료비 지원사업, 환자 교육강좌 등을 10년간 펼쳐오다 희귀질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1년 6월 한국희귀질환재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지난 6월 29일 재단이 설립된 지 10주년을 맞았다. 재단은 지난 10년 동안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을 위한 유전상담서비스 및 진단 지원, 유전상담사 전문인력 양성 지원 등을 통해 희귀질환자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이 되주고 있다.
그러나 김현주 이사장은 아직까지 유전상담서비스가 제도화 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지난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제도화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정부의 희귀질환 진단사업에 유전상담이 포함되지 않으면서 유전상담서비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희귀질환관리법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희귀질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절실한 유전상담서비스를 의료서비스로 제공해야 한다는 게 김 이사장의 설명이다.
- 1994년 아주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유전학클리닉을 개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국내에는 유전의학이라는 개념이 생소했을 텐데 임상유전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나.
평소 유전학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 외모도 성향도 닮는다는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의과대학에 Dr. OPITZ라는 임상유전학 교수가 있었는데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 우선 소아과 전문의를 따고 소아들의 임상양상을 경험한 후 유전학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조언 해주더라. Dr. OPITZ의 조언대로 1967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소아과를 마치고, 뉴욕 Mt. Sinai 의과대학에서 임상유전학을 전공하게 됐다. Mt. Sinai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1994년 아주대병원 설립 때 초빙돼 27년간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을 뒤로 하고 귀국, 국내 최초로 아주대에 의학유전학과를 신설하고, 병원에 유전의학클리닉을 개설하여 희귀유전질환 진료와 함께 유전상담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
385명 희귀질환자 및 가족들
"유전상담서비스 만족" 95%
"유전상담서비스 지속적 지원 필요" 97%
- 유전상담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성 질환이기 때문에, 부모를 포함한 가족 중에서 그 비슷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가족력이 없어도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처음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언제든지 희귀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갖고 있는 셈이다. 유전상담의 목적은 이러한 선천적 결손이나 유전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와 위험도를 가진 가족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을 하는데 있다.
하지만 종종 환자의 가족들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에 이론적인 부분만 나열하는 의사의 모습에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의사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 희귀질환을 진단 받았을 때 머리가 하얘져 질환에 대한 의학적, 유전학적 설명도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유전자 검사 전 검사의 목적과 과정을 설명해주고 질환 가능성에 대해 미리 이해를 시킨다면, 진단 검사 결과를 통보받았을 때 환자와 가족들은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에 조금 더 쉬울 것이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유전자 검사 전과 후 유전상담이 꼭 필요하다.
엄춘화씨 사연만 봐도 그렇다. 엄씨의 아들은 근육병을 확진 받고 향후 태어날 남아의 경우 50%의 확률로 근육병에 걸리게 된다고 상담을 받았기 때문에, 동생을 임신하고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두 명의 근육병 아들을 키우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며 결국 중절수술을 선택했다. 그것도 무려 두 번씩이나. 근육병은 엄마가 보인자인 경우에는 재발 확률이 남아에서 50%이지만 엄마가 보인자가 아니고 아들에게서 처음 돌연변이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재발 위험도는 거의 없다. 엄춘화씨를 검사해보니 엄마는 보인자가 아니고, 정상이었다. 정확한 유전상담을 받지 못하고, 부정확한 정보로 태아가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번의 안타까운 일을 경험하게 된 셈이다. 이러한 비극은 적절한 유전상담서비스를 통해서 예방돼야 한다.
- 한국희귀질환재단에서 유전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10년간 서비스를 제공받은 사람은 얼마나 되나. 그들은 서비스에 만족하나.
2011년 정부의 인가를 받아 한국희귀질환연맹에서 한국희귀질환재단으로 재단법인을 창립하면서 첫 번째 목적사업으로 유전상담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6월 24일 10주년 기념식에서도 보고했듯이 재단은 건양대병원 등 전국 4곳의 유전상담클리닉에서 시행된 3,207건의 유전상담서비스와 유전자 검사비용을 지원해왔다. 특히 재단은 2013년과 2018년 그리고 2019년 등 3회에 걸쳐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유전상담서비스 지원사업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총 385명이 설문조사에 답했는데 분석결과 유전상담서비스를 받은 95%의 환자와 가족들이 ‘유전상담서비스에 대해 만족했다’고, 97%가 ‘유전상담서비스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유전상담서비스가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에게 꼭 필요하고 적정한 의료서비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상담 활성화되려면 수가코드 신설 및 수가책정 필수
의사와 유전상담사가 팀으로 접근 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
- 유전상담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너무 적은 것 아닌지.
가천대길병원, 건양대병원, 서울시립 동부병원, 서울시어린이병원 등 전국 4곳에 유전상담클리닉이 개소됐었다. 그러나 3곳은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로 현재는 건양대병원이 유일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유전상담서비스가 건강보험에 행위분류(수가코드)돼 있지 못하니 재정적으로도 클리닉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유전상담은 30분 내지 1시간 이상 소요되는데 어떤 병원들이 수가코드도 없고 수가도 책정돼 있지 않은 유전상담서비스를 손실을 감수하면서 제공하려 하겠나. 희귀질환자와 가족들에게 충분한 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전상담서비스에 대한 수가코드가 책정되고 유전상담에 대한 수가가 마련돼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국내에서도 유전상담서비스가 활성화돼 희귀질환 관리와 예방을 위한 의료서비스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유전상담서비스는 임상유전학 전문의 혼자 다 할 수 없다. 의사와 유전상담사가 한 팀으로 접근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의사와 유전상담사가 팀으로 접근해 진단은 검사결과를 토대로 의사가 내리더라도 상담은 유전상담사가 하도록 해야 한다. 유전자 검사 전에는 가족력과 의무기록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검사의 임상적 필요성을 설명하여 사전에 충분히 이해된 상태에서 검사에 동의할 수 있게 하고, 검사 결과가 나오면 질환의 재발 위험도 및 추가 검사의 유용성 등을 환자와 가족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환자와 가족들이 의학적, 유전학적,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질환을 충분히 이해하고, 힘들지만 희귀질환에 적응하여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이미 국내에도 대한유전학회에서 인증받은 50여명의 유전상담사가 배출돼 있다. 유전상담사의 역할을 인정하여 이들을 활용한다면 유전상담서비스가 활성화되어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진단검사 지원사업’ 보완 필요
검사 동의서 작성 전 유전상담 추가해야
- 사실 2015년도에 희귀질환법이 제정됐다. 정부도 이를 근거로 희귀질환에 대한 5개년 종합계획(2017-2021)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정부는 희귀질환관리법에 ‘이 법은 희귀질환의 예방, 진료 및 연구 등에 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 및 시행하여 희귀질환으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부담을 감소시키고 국민 건강증진에 이바지 하는 것으로(1조), 국가와 지자체는 희귀질환관리에 관한 사업을 시행하고 지원하여 희귀질환자에게 적정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3조)’고 돼 있음에도 정작 환자와 가족들이 원하는 유전상담서비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또한 2017년 희귀질환관리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2012년 시작한 희귀질환 진단사업을 ‘유전자 진단검사 지원사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유전자 진단검사 지원사업은 보완이 필요하다.
김현주 이사장이 제시한 유전자 진단검사 지원체계 개선안. 현재는 진단의뢰기관이 유전자 검사 동의서를 받기 전 유전상담이 이뤄지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김 이사장은 동의서 작성 전 유전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전상담 과정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주 이사장이 제시한 유전자 진단검사 지원체계 개선안. 현재는 진단의뢰기관이 유전자 검사 동의서를 받기 전 유전상담이 이뤄지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김 이사장은 동의서 작성 전 유전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전상담 과정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진단의뢰기관이 서울대병원에 위탁한 유전자 진단지원 기관에 임상정보와 검사 동의서, 시료 등을 발송하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유전자를 진단하고 이의 결과를 질병관리청과 진단의뢰기관에 다시 통보해주고 있는데,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동의서 작성 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의심이 되는 유전자 질환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제공과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유전상담이 필요하다. 또한 진단의뢰기관이 환자에게 진단결과를 통보할 때도 검사결과에 대한 정확한 임상적 의미와 함께 치료방법, 재발 위험 등의 유전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전상담서비스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 평생을 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오셨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994년 귀국하여 이름조차 생소했던 희귀질환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사회적 여건 조성에 전념해온 지 27년이다. ‘사랑의 한걸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의 릴레이, 희귀질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을’을 기치로 한국희귀질환연맹을 거쳐 한국희귀질환재단 10주년을 맞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그동안 한국의 희귀질환 치료여건에는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편견이 개선됐고, 정부에서는 ‘희귀난치성질환 의료비지원사업’과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사업’ 등의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사회적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20년 전에 시작한 ‘사랑의 릴레이, 희귀질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을’을 통해 희귀질환자와 가족들이 도움을 받는 위치에서 희망을 전하는 주체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난달 열린 재단 10주년 기념식에서 질병관리청 정은경 청장께서 축하영상 메시지를 통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민관 협력을 통해 희귀질환자 모두가 안심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포용국가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격려해주셨다. 희귀질환은 평생 갖고 가는 질환이기 때문에 감염병이나 외상 등과는 달리 자기 질환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질환을 극복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유전상담은 희귀질환의 적절한 관리와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하다.
앞으로 질병관리청과의 협의를 통해 내년부터 시행될 제 2차 5개년 종합계획에는 ‘유전상담서비스’가 포함될 수 있도록 다시한번 힘을 내보겠다. 국내에 유전상담서비스를 들여온 것도 나이니 끝맺음 또한 내가 해야 하지 않겠나
출처 : 코리아헬스로그 http://www.koreahealthlog.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39">http://www.koreahealthlog.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