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질환의 발생률이 매우 드물어 일반인은 물론 의료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병이다.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알려진 것만도 6000종이 넘는다. 때문에 진단에 어려움이 있고, 그 희귀성으로 말미암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효율적인 치료제의 연구·개발이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많은 경우 치명적이거나 난치성 질환으로 장애를 초래한다.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성 질환으로 가족 내에서 재발되거나 대물림될 수 있어서, 가정이 붕괴되고 때로는 ‘사회적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경제적 부담은 물론 사회·심리적 부담이 매우 큰 질환이기 때문에 희귀질환의 조기진단 및 예방,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 양성 및 인증, 연구 지원, 유전상담 서비스 제공 등 포괄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에서도 희귀질환을 유병률이 2만명 이하인 질병으로 정의하고 2001년부터 ‘희귀 난치성 질환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그 대상 질환을 점차 확대하여 현재 133종의 질환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2006년부터 질병관리본부 산하 ‘희귀난치성질환센터’를 설립하여 718종의 희귀질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유전질환일 경우 유전상담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유전상담은 정부의 희귀 난치성 질환 의료비 지원 사업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미 수년 전부터 유전질환을 가진 희귀질환 환자들의 자조모임(환우회) 등에서 유전상담 서비스를 빈번하게 요청해오고 있지만, 유전상담 서비스에 대한 코드조차 잡혀 있지 않고 급여제도도 마련되지 않아 실제 의료현장에서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제공되고 있지 않다.
‘5분 진료’가 보편화될 수밖에 없는 국내 의료급여체제에서는 상당한 시간(최소 30분)이 소요되는 유전상담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서 제공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국내 전문 유전의료 인력의 절대 부족(암 전문의는 1000여명인 데 비해 임상유전학 전문의는 수십명 정도)으로 희귀 난치성 질환의 조기진단과 효율적인 관리, 예방 차원의 유전상담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유전상담(Genetic Counseling)이란 유전성 질환이나 선천성 이상, 그 외의 유전자 연구 및 검사 분야에서 환자나 그 가족에게 의학적·유전적 정보를 제공하고 심리적·사회적으로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서 상담을 통해 환자나 그 가족이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자율적으로 방향성을 결정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 임상 실천과정의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도부터 유전상담이 보편화되었다. 유전상담은 임상 유전의료 전문 서비스의 일환으로 유전상담사의 교육과 수련과정 및 인증이 제도화되어 있는 특수전문 의료서비스이다. 특히 최근에는 21세기의 유전의료시대에 요구되는 생명 유전정보 관리를 위해서 유전상담의 필요성과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희귀질환은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민 건강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조기진단과 유전상담을 통해 효율적인 관리와 예방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희귀질환 치료 목적의 사회적 여건 조성을 위한 양적 성장을 일구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