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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연세인 "가장 아름다운 동행"
작성자 : 한국희귀질환재단 작성일 : 2021-08-30

가장 아름다운 동행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의 대모,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의학 61)


척박한 국내 희귀질환 의료 현실의 1세대 개척자

2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희귀질환’. 내가, 혹은 우리 가족이 가진 질병이 무엇인지 이름조차 모르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적절한 진단과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아득함은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희귀질환의 종류는 8,000종이 넘지만 여전히 시장성이 없어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고 있으며, 너무 다양한 종류의 질병이 존재해 진단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현재 80만 명 이상 환자들의 수많은 희귀질환이 난치성 만성 질환으로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희귀질환은 유전성 질환으로 가족 내 재발, 대물림되는 경우가 있어 환자들은 공포와 아픔 속에서 살아간다. 


이들을 위해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을 헌신해 환자들을 보듬으며 희귀질환에 대한 척박한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끌어올린 이가 있다. 바로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현주 동문이다. 2019년 대한민국사회공헌 대상을 수상한 그는 우리나라 희귀질환 의학 분야의 개척자이자 환자들의 대모로 불린다. 



기초 의학에 대한 관심을 키운 캠퍼스 생활 

김현주 동문이 우리 대학교에 입학했던 것은 1961년. 의대에 진학하는 여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친가, 외가 쪽으로 의사가 많았던 환경, 여자라고 해서 의사가 되는 진로에 한계를 두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철학에 힘입어 우리 대학교 의학과를 선택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도전하고 싶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의대에는 전체 150명 중 한두 명 정도가 여학생일 정도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낮았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선배 중 한 분이 우리 대학교 의대를 입학한 후 제게 추천해 주셨어요. 우리 대학교는 여학생의 비율이 10퍼센트 정도가 된다고 하셨죠. 그 말을 듣고 개방적이고 앞서가는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등생으로 명문 중·고를 졸업한 김현주 동문은 의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변함없이 앞서갔다. 강의 시간 가장 집중하는 학생, 가장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으로 학문에 열중했다. 그런 그가 유전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홍석기 교수님의 생리학 강의를 들으면서다. 


“의대 졸업 후에는 두 가지 진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는 환자와 가족을 위해 진단, 처방, 치료 등을 하는 임상 의사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를 위한 교육자의 길이에요. 후자는 다시 생리학, 약학 등의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으로 나뉩니다. 저는 그 당시 미국에서 수련 후 귀국하신 홍석기 교수님의 열정적인 강의를 듣고 본과 2학년 때 학생 연구 스칼라십 대상자 2명 중 한 명에 선정돼, ‘저온에서의 신장기능 연구’에 대한 동물 실험에 참여하면서 기초의학 연구에 깊은 관심과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특히 어려서부터 자녀가 부모의 형질을 닮게 되는 현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기초의학 중 유전학을 연구하는 진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선진 의학유전학을 배우고, 성장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유전학에 대한 연구 저변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 김현주 동문은 선진 유전학을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섰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 의과대학의 유전적 희귀질환 대가로 이름난 임상유전학 전문가 오피츠 교수(Dr. Opitz)에게, 그분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어요.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니 소아과에서 먼저 임상 경험을 하고 유전학 코스를 밟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하셨죠. 그래서 ECFMG(Education Commission for Foreign Medical Graduates) 시험을 치러 통과하고 미국 다운스테이트 (Dawn State) 의과대학에서 소아과 수련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수련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적인 장벽,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과 맞서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난관은 오히려 그에게 ‘할 일이 있고, 의지가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그의 의지는 어떤 순간에도 발휘됐다.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고 늘 환자를 위해 빈틈없이 일하고자 애썼다.


“입원 환자가 열이 일정 정도까지 올라갔을 경우, 의사가 직접 진료하지 않고도 PRN 처방을 내리면 해열제를 처방할 수 있지만, 저는 간호사가 전화하면 밤이더라도 직접 가서 환자를 봤습니다. 내 환자를 내 눈으로 보고, 간호사의 기록을 직접 봐야 안심이 됐습니다. 유난하다는 말도 들었죠. 제가 남보다 성실해서라기보다는, 환자에 대한 관심과 그 당시 제 자신이 언어나 문화적으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간호사와 전화로만 소통하는 과정에서 제 판단이 잘못돼 환자가 피해 보지 않도록 실수를 최대한 줄이고 싶었습니다.” 


소아과에서 다운증후군, 근육병 등 다양한 유전질환 환자들을 경험한 김현주 동문은 계획했던 대로 뉴욕 마운트사이나이 의과대학(MT. Sinai School of Medicine)에서 의학유전학 특별연구원(펠로우십)이 돼 연수 과정을 밟고 전문의를 취득했다. 그가 공부하던 시기는 미국에서 유전학 발전이 급물살을 탈 때. 1970년도 미국에서는 산모의 양수 속을 떠다니는 세포를 배양해 염색체 이상 여부를 진단하는 ‘다운증후군 산전 진단 검사법’을 막 시작할 무렵이어서, 유전적 질환을 보유한 환자의 진단과 관리, 유전 상담 등을 아우르는 의학유전학(Medical Genetics) 연구가 매우 활발했고 주목받았다. 김현주 동문은 이 시기를 목격하고 그 변화를 몸소 체험했다. 또한 1982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의학유전학전문의 인증 제도가 도입됐고, 김현주 동문은 자격시험을 통과해 미국 제1대 의학유전학 전문의(Diplomate, A.B.M.G)와 Founding Fellow, Am. College of Medical Genetics (F.A.C.M.G) 자격증을 획득했다. 임상뿐만 아니라 연구, 교육까지 포함하는 전문의 이상의 자격이었다. 유전학의 발전을 이끌어 온 미국에서도 그는 개척자였던 셈. 김 동문이 현재까지 한국의 의학유전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시간이었다. 


[연세소식] vol.630

https://www.yonsei.ac.kr/ocx/news.jsp?mode=view&ar_seq=20210825165332689066&sr_volume=630&list_mode=list&sr_site=S&pager.offset=0&sr_cate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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